기록(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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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케
약 2년 전부터 포케는 내 최애 음식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돈 주고 그걸 왜 먹어?'라는 생각이었지만 처음 접한 포케는 의외로 괜찮았고 스스로 건강한 선택을 한다는 자기 만족감을 주었다. 속을 불편하게 하는 자극적인 음식들 사이에서 포케는 도심 속의 공원처럼 신선하고 상쾌한 기분 좋음을 내어주었다. 포케의 매력은 단연 '조합'이라고 느낀다. 샐러드는 한 끼 식사로 너무 가볍고 찌개나 덮밥은 너무 자극적이다. 그럼 그냥 샐러드와 밥을 함께 먹으면 어떨까? 도저히 어울릴 거 같지 않은 샐러드와 밥, 혹은 샐러드와 면이 함께 먹었을 때 예상 외의 조화로움을 주며 신선함과 든든함을 함께 선사한다. 같이 먹기에 매력적인 음식이지만 비빔밥처럼 비벼먹기는 영 힘든 음식이라 수저와 포크를 사용해 적정량씩을 모아 먹..
2024.06.09 -
국힙
얼마 전에 맨스티어와 ph-1 간의 디스전을 보고 든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나는 쇼미더머니 3를 보고 힙합의 팬이 되었다. 목을 거칠게 긁어대며 랩을 하던 바비는 아주 멋있었고 내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이후로 힙합을 즐겨듣고 가사를 외우고 랩을 따라부르고 쇼미더머니를 즐겨봤다. 가리온, 벅와일즈, 두메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저스트뮤직과 일리네어 레코즈, 하이라이트 레코즈 등 지금은 거의 없어진 이름들은 내가 힙합을 듣던 시기에 큰 산맥들이었다. 그들의 노래는 되게 멋지게 느껴졌고 '이게 힙합이구나...' 싶었고 이들이 언제까지고 활동할 거라 생각했다. 이런 노래들이 계속해서 주류를 이룰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듣는 거야 말로 멋진 힙합이었고, 때 지난 노래들은 다시 듣기에 가사도 멜로..
2024.05.12 -
좋아한다. 좋다. / 사랑한다. 행복하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과 '행복하다.'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님께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에도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세상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열렬히 탐해본 적도, 무언가에 미치도록 빠져본 적도,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 적도, 기쁨으로 가득차 환호해 본 적도 없다. 그런 지금까지의 내 삶에 사랑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 했다. '좋다', '좋아한다'라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분명히 사랑이라면, 행복이라면 이것들과 다를 거라고, 혹은 달라야만 한다고 스스로 환상에 가까운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반짝이는 순간들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가올 것이..
2024.03.28 -
무뎌지다.
어제 소개팅을 다녀왔다. 나보다 한 살 어렸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매우 앳되 보이는 얼굴로 출근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한 사람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되게 멋있었고 대단해 보였다. 그와 동시에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운이 좋았다며 본인은 그렇게 열심히 살지 않는다는 그녀를 칭찬하고 경탄해했던 건 당신이 열심히 산 거여야 내가 덜 한심해 보일 거라는 방어기제가 포함되어 있었다. '탕아'라는 글을 쓰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님의 돈을 축내기만 하는 나를 돌아본지 한 달이 지나가지만 탕아는 아직도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전에 비해 세줄일기를 쓰는 빈도가 매우 줄었다. 세줄일기는 생각하는 시간의 척도이므로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매우 줄었다는 얘기다. 아무것도 하지 않..
2024.02.18 -
탕아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의 지갑에 손을 댔었다. 집에 여유가 있던 것도 아니지만, 지갑에는 현금이 있어야 한다던 당신의 말씀대로 아빠의 지갑은 항상 두툼했었다. 아빠는 귀가 후 씻으러 갈 때 지갑을 항상 소파 위에 올려뒀었는데, 그 틈을 타 나는 지갑을 열어보고 지폐가 많으면 돈을 꺼내갔다. 처음에는 한 달에 한두번 초록색 지폐를 가져갔지만 어느샌가 일주일에 한두번씩, 가끔은 노란색도 꺼내갔다. 처음엔 온몸이 떨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던 행위가 너무 자연스럽게 몸에 밸 때 즈음엔 나는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돈을 사용했다. 술담배를 하지 않고 집에서 꼬박꼬박 밥을 챙겨주던 그 나이부터 나는 사치를 알았다. 한 팩에 천 원 씩 하던 유희왕 카드를 한 상자로 산다. 그럼 삼만원 남짓 했던 거 같은데 그 많은 카드를 ..
2024.01.19 -
노래방
내가 다니는 학교 앞에는 자주 가는 노래방이 있다. 1학년 때 선배들이 소개해준 곳으로 군대를 다녀와 마지막 학기를 앞둔 4학년이 된 지금까지 매우 애용하고 있다. 주변 친구들이 나보고 그 집 아들이라고 할 정도이고, 그래서인지 천 원에 두 곡으로 바뀐지 오래지만 갈 때마다 천 원에 세 곡 꼴로 서비스를 받는다. 사장님과도 매우 친해 다른 손님들에게는 존댓말을 쓰시지만 내게는 반말을 하시고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는 담화를 나누기도 했다. 사장님과 이렇게 친해진 이유에는 물론 자주 가서도 있겠지만 진짜 이유는 '물'이라고 생각한다. 혼코노를 좋아하는 나는 발성이 좋지 않아 목이 금방 아프곤 한다. 그래서 노래방을 갈 때는 항상 물을 많이 마시는데, 가끔 물을 2개씩 마실 때면 사장님께서는 “요즘 학생..
2023.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