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한다. 좋다. / 사랑한다. 행복하다.
나는 '사랑한다.'는 말과 '행복하다.'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부모님께도 사랑한다는 말을 잘 하지 못하고, 어느 순간에도 행복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과 세상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과 행복에 대해 이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살면서 무언가를 열렬히 탐해본 적도, 무언가에 미치도록 빠져본 적도, 지금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란 적도, 기쁨으로 가득차 환호해 본 적도 없다. 그런 지금까지의 내 삶에 사랑과 행복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 않아 했다. '좋다', '좋아한다'라고 느낀 적은 많았지만, 분명히 사랑이라면, 행복이라면 이것들과 다를 거라고, 혹은 달라야만 한다고 스스로 환상에 가까운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반짝이는 순간들이 언젠가는 내게도 다가올 것이고 그 때서야 나는 사랑과 행복을 얘기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지난 주, 그런 내게 여자친구가 행복을 물었다. 언제 행복하냐는 질문에 나는 평소의 생각을 솔직히 말했다. 나는 행복이란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고, '아, 좋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은 많지만 그건 그냥 좋다고 생각하지 행복이라고 생각 하지 않는다고. 나는 여자친구에게 되물었고, 그녀는 무언가 우연히 잘 맞아떨어질 때에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예전에 갔던 여행에서 모든 상황이 행운으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고, 그 여행이 몹시 행복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그런 큰 행운을 경험한 적도 없고 작은 우연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으므로 그냥 그렇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주제에 대한 얘기를 마무리할 때 즈음 그녀는 내게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고 나는 본연의 반골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그냥 말을 얼버무렸다. 연애도 아직 나의 행복을 찾아주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저께, 이런 모질한 내게 형들이 사랑을 물었다. 운동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귀가하던 중 어찌저찌하다 형들과 사랑에 대해서 얘기했고 나는 형들에게 아직 '사랑한다'는 감정을 모르겠다, 사실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고 형들은 부모님에게 사랑을 못 느끼는 건 문제가 있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평소 생각대로 뭐가 사랑인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라고 얘기했지만 무언가 위화감이 들었다. 그래도 금새 평소대로 돌아왔고 어제도 평소와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자려고 누웠을 때, 잠이 오지 않아 여러 가지 잡생각을 하던 중 문뜩 '내가 살아평생 부모님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를 못 쓴다면 어느 누구에게 사랑을 말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사랑이 뭔지 모르지만 내가 부모님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명히 사랑일 수 밖에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일전에 스스로에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척도를 물었었다. '나는 부모님을 대신해서 죽을 수 있겠는가?' 아니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이렇게 대답하고서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냐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어제, 여전히 부모님을 대신해서 죽을 수 없는 나는, 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더라도 이건 분명히 내게 사랑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내게도 사랑이 있다면, 분명 저렇게 고결한 질문은 아니더라도 내게 부모님에게만 해당하는 질문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내가 지금 사용할 수 있는 사랑의 척도이지 않을까하여 곰곰이 생각해봤다. 결과, 죽기 직전에 누군가를 보고 싶다면 부모님 이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했고 이걸 나의 사랑 판별기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제는 단호히 말하건데, 나는 부모님을 사랑한다.
그리고 오늘, 한 후배에게 내가 행복을 물었다. 후배는 본인이 평온하게 등교하던 중 공원에서 마주친 청설모가 하루의 행복이 되어주었다고 얘기했다. 분명 후배가 청설모를 보고 느낀 감정을 나 또한 느껴봤지만 지금까지는 행복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히 사람들마다 행복과 사랑의 척도는 다르다는 사실도, 내 척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음에도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하루는 매우 반짝여보였다. 그리고 어쩌면 반짝이는 감정들이 사랑이고 행복이라기보다, 내가 사랑이라고 행복이라고 생각함으로써 그 감정들이 반짝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지난주 경복궁의 햇빛이 행복이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가 내게로 와서 꽃이 되어주었다던 시가 생각나는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