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않아도'를 읽고
매우 춥던 날, 읽을 책을 정해두지 않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빌려볼까 싶었던 책들은 모두 대출 중이었고 평상 시에 좋아하던 작가님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최은영 작가님의 '밝은 집'을 찾으러 갔다. 하지만 해당 서가에 책이 없었고 속으로 궁시렁 대면서 옆에 있던 '애쓰지 않아도'를 들고 나왔다.
호흡이 매우 짧은 글들로 이뤄져 있었는데 첫 단편이 '애쓰지 않아도'였다. 단편집의 제목이 되는 단편은 지금까지 중간에 위치해 있었던 거 같은데 처음부터 등장해 조금 놀랐다. 책의 중간까지 읽었을 때 단편들이 전반적으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고 느꼈다. 작가님이 쓰는 글의 특성 상 모두 상처가 있는 사랑이고 아물어도 흉터가 남는 마음이지만 전에 읽었던 책들만큼 가슴이 조여지는 얘기는 아니었다.
후반부에는 동물들에 대한 사랑과 생명에 대한 존중을 담은 짧은 얘기들이 모여 있었다. 보통 한 단편을 모두 읽고 다음 단편으로 넘어갈 때 생각이 한 번씩 정리되기에 동물윤리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즈음 긴 호흡의 글이 등장했다. 각 단편마다 그림이 한 페이지씩 등장했는데 마지막 단편은 제목에 그림이 들어와 긴 흐름을 유지하며 읽었다. '무급휴가'가 작가님이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들을 관통하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논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서 뭔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깊은 공감을 위해서는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은영 작가님의 얘기들에는 '왜'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상처를 준 인물 또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임을 암시하되 그 인물을 이해시켜 주지는 않는다. 그렇게 이해할 수 없어도 고통과 그 위에 돋아난 새 살을 읽는 이가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애쓰지 않아도'를 다 읽었을 때 애쓰지 않아도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나로서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는 세상. 누군가에게 사랑 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곳. 하지만 그런 곳은 있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든 상처받고 나도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곳이니까, 그 상처를 온전하게 받아들이지는 못하더라도 언젠가는 괜찮아진다고. 사랑받으려고, 상처를 마주하려고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 책이 말해주고 있었다.